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석열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 (문단 편집) === 발언 자체의 부적절함 ===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08081300076_0.jpg|width=100%]] [[파일:external/pds26.egloos.com/a0005716_5489689ae5d1d.jpg|width=100%]] {{{#!html }}} 애초에 [[전두환]]은 극미량의 명분도 없는 [[12.12 군사반란|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후 그 쿠데타에 정당하게 항의하는 자국민들을 자국 군대를 동원해 [[5.18 민주화운동/학살|유아, 임산부까지 가리지 않고 백 단위로 학살한]] 악행으로 인해 내란수괴범으로 구속당하고 '''[[사형]] 판결까지 받은 중범죄자다.''' 그렇기에 그를 옹호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상 [[북한]]의 김씨 3대와 [[아돌프 히틀러]], [[폴 포트]]를 옹호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행위로 여겨지며, 이에 따라 실생활에서 전두환을 옹호하면 사회적인 매장을 각오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의 대중들은 인터넷상의 일부 [[극우]] 인사들을 제외하면[*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와 [[전광훈]] 같은 극우 인사들조차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찬양하면 찬양했지 전두환 찬양은 비공식 석상에서도 하지 못하는 판이다.] 대부분 [[전두환]]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진보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 세력 내에서도 전두환은 공 언급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채 문자 그대로 [[인간 말종]]으로만 취급받고 있다. 제도권 정치인이나 언론 중에서도 전두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옹호하는 사람은 찾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나마 [[우리공화당(2020년)|우리공화당]]이 전두환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옹호하고 있지만, 우리공화당은 명목상 정당이지 '''[[박정희]]-[[박근혜]] 부녀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팬클럽'''이라고 봐야 한다. 2021년 12월 31일 박근혜가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자 그녀가 입원 치료중인 [[삼성서울병원]] 주변에서 강추위와 코로나를 무릅쓰고 석방 축하집회를 열었던 박정희 박근혜 골수 팬클럽에 불과하다.] 전두환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군사독재와 인권탄압의 아이콘'''이고, 우리나라의 국사 교과서나 대부분의 역사서적에도 공식적으로 [[1995년]] '''자신의 내란수괴범죄행위로 법정구속까지 당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97년에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지만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만 봐도 전두환은 줄곧 최하위권에 속한다.[* 다만 [[김영삼]]은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사망 전까지는 전두환보다도 낮게 나오는 굴욕 중의 굴욕을 겪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을 빼면 괜찮았다는 주장을 들고 나오니 국민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두환/부정적 평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벌인 민간인 학살 같은 일만 잘못한 것이 아니고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로도 온갖 악행들을 저질렀다.''' 일단 집권 과정부터가 쿠데타로 시작되었고, [[문민통제]]의 원칙과 [[대한민국 헌법]]의 원칙을 깬 것에서 취임 자체에서 예견된 문제였다. [[삼청교육대]][* 흔히 삼청교육대로 범죄자들을 때려잡았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삼청교육대에는 치적쌓기식 사업이 되어 잡범들과 무고한 사람들이 훨씬 많이 끌려가 부당한 희생자들이 많이 발생했으며 그 중에는 어린 청소년들까지 있었다. 그 후, 오히려 범죄율과 인신매매는 증가했고, [[정치깡패]] 난동 등 까일 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정희와 전두환도 조직폭력배가 자리 잡고 성장하지 못 하게 한 것에 대한 기여도는 있었지만 한국에서 깡패와 조폭이 정리된 것은 [[노태우]] 대통령이 실시한 [[10.13 특별선언|범죄와의 전쟁]] 때라고 할 수 있다.], [[녹화사업(은어)|녹화사업]],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은폐 및 축소[* 그나마 전두환이 '부랑아 퇴치에 기여'했다고 [[박인근]] 원장에게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969346&plink=ORI&cooper=NAVER|국민포장·훈장을 수여]]하는 만행을 저지른 건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시점이에 진짜 모르고 준 거라고 쳐도, 전두환은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드러난 '''후에도''' [[김주호(1933)|김주호]] 당시 부산시장에게 "'''박 원장은 훌륭한 사람이오. 박 원장 덕분에 거리에 거지도 없고 좋지 않소?'''"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망언을 남기며 박인근의 만행을 덮었기에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박인근은 전두환의 비호 덕분에 짧게 감옥살이를 한 후 [[권악징선|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뒤로 한 채 1천억대 자산가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해당 옹호 발언 이틀 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방영되었고 어김없이 박인근에게 포장을 주는 전두환 모습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윤석열을 속으로 욕하며 시청했다.] 등의 [[인권침해]]와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간첩 조작]],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정적에 대한 정치 보복]],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야당 탄압]], [[보도지침]], [[언론통폐합]] 등의 [[언론탄압]], [[3S 정책]]이라는 [[우민화 정책]]과 [[무림파천황 사건]] 등의 문화탄압, [[국제그룹]]과 [[동명목재상사|동명목재]][* 지금도 [[서울 공화국|수도권 집중 문제]]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부울경]]의 경제 규모가 수도권의 60~70% 수준에서 30~45%로 무너뜨린 원흉이 [[국제그룹]]과 [[동명목재상사|동명목재]] 해체로 보는 시각도 많다. 저 두 기업이 계속 존속했다면 부울경에 있는 각종 산업시설들 간의 시너지 효과로 [[간사이]] 수준으로 혹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대도시권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대한선주, 삼호그룹, [[명성그룹]] 등을 권력으로 파산시켰던 보복성 재벌 해체나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자동차 산업 통합조치]]로 인한 경제 및 산업 초토화, 정부가 경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관치|관치경제]] 문제, [[평화의 댐]] 대국민 사기극과 9,500억원 비자금과 같은 부정부패[* 이 중에서 7천억 원은 대기업을 상대로 갈취했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이 비자금 9,500억은 2020년대가 아닌 1996년에 확인되었을 때 기준이므로 2022년 환율로 환산하면 무려 '''1조 9,200억 원'''에 이른다.], 한강 직강화라는 공공사업을 명분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무시하는 등 아무리 좋게 봐줘도 '정치는 잘 했다'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는 수준이다. 애초에 5.18 민주화운동 이후 정치라도 잘 했다면 [[6.10 민주 항쟁]]으로 정권이 무너질 리도 없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정권을 잡고서도 자신들의 맘에 안들면 유능하든 유능하지 않든 숙청했으며, 그마저도 제대로 된 안목으로 인재를 뽑은 것이 아닌 하나회 출신자나 그들의 추천으로 낙하산 인사들을 엄청나게 임명했다. [[노태우]][* 1982년 초대 체육부 장관을 맡았고, 1982년부터 1983년까지는 [[내무부]] 장관에 앉았다.]·[[정호용]][* 1987년 1~5월 [[내무부]] 장관에 앉았다.]·[[박세직]][* 1985년에는 [[총무처]] 장관, 1986년에는 체육부 장관에 앉았다.]·[[장세동]]·[[황영시]][* 1984~1988년까지 [[감사원]]장을 맡았다.] 등 전문성과 무관한 쿠데타 세력이 요직에 앉았다. 그들이 무수한 과오를 저질렀음을 감안하면 적재적소에 전문가들을 뽑았다는 말보다는 그냥 우연히 [[김재익|유능한 인재 하나]]가 얻어걸린 수준이다. 이는 같은 군부정권인데도 [[박태준]], [[오원철]] 등을 적극 등용한 [[박정희]]와 비교된다.[* 차라리 [[김재익]]을 등용해서 대한민국 경제를 살렸다 정도로만 말했으면 논란이 되더라도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전두환-노태우 집권 시기가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전성기라고 볼 수 있기 때문. [[3저 호황]] 덕이라는 말도 있으나, 김재익을 등용시켜서 대한민국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3저호황 이전부터라는 평가도 있는 만큼 3저호황 덕분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거기다 그렇게 얻어걸린 유능한 인재라도 잘 써먹은 것이 아니라서 [[금융실명제]]를 시행하려고 했으나 전두환의 측근들이 정치자금을 못 받아먹는다며 하도 난리를 쳤고, 전두환이 이를 받아들이는 바람에 사이가 확 틀어지는 등 얻어걸린 인재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다. 어떤 역사가들은 김재익이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에서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숙청되었을 것이라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김재익 본인 스스로도 지인들이 독재자 밑에서 욕한다고 비난 하기도 했고 본인 역시 전두환이 독재자인 것은 부정하지 않는 등 전두환에 대한 감정도 별로 좋지도 않았다.] 거기다 옹호한다고 한 발언 중 '군 조직 관리를 해서 전문가들에게 맡겼다'는 발언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 전두환이 군대에서 조직 관리 능력을 발휘해 만든 것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한 '''군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하나회라도 일을 잘했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박정희]]의 비호를 받으며 군내에서 부정부패로 물의를 일으키고, 비하나회 사람들에게 안하무인하게 행동했으며 [[베트남 전쟁|월남전]] 당시 전방에서 있는 대로 뻘짓하다 욕도 많이 먹었다.[* 안철수가 대선공약에서 군 인사권을 군에게 양도하겠다는 헛소리를 했다가 엄청난 욕을 얻어먹은 것도 저 하나회 같은 사조직 때문이다. 군사독재를 겪은 국가에서 문민통제를 부수겠단 말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나마 싸우기라도 잘 했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하나회의 실질적 대장인 전두환은 월남전 당시 1970년 육군 제9보병사단 29보병연대 연대장으로 참전했으나, 행실에 하도 문제가 많아서 현장에서 상관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당시 9사단장이자 이후 육군특수전사령부의 2대 사령관인 조천성 장군이 '''"사병들은 마실 물도 마땅치 않은데 전두환은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테니스나 치고 앉았다."'''고 29연대장에서 해임시켜야 한다는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전두환의 연대가 군공이 전혀 없자 전두환은 무기밀매상으로부터 적성화기 다수를 구매해서 그걸 노획물이라고 속여 상부에 바치며 있지도 않은 군공이 있다고 속였다. 결국 참전한 장교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도 직속상관인 9사단장 조천성, 그리고 주월사령관 이세호가 반대[* 잦은 인사오류 + 민간인 상대 문제 행위 + 작전지휘권을 참모 이하에게 맡겨 놓은 사례 다수 + 전투수행능력 부족 + 무기 밀매 및 적성화기로 거짓보고(없는 군공 있다고 속이기) + 연대장 부임 이후 파티가 너무 잦음 등.]하여 훈장만 수여받고 1계급 특진은 취소됐다.[* 그리고 저런 주장을 한 조천성 장군은 오히려 박정희의 눈 밖에 나서 더 이상 진급을 하지 못 하는 불합리함을 겪고, 1977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고, 이후 행적이 알려지지 않다가 민주화가 이뤄지고 나서인 1987년에 와서, [[한국가스공사]] [[이사장]]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 2007년 4월 14일 암으로 사망했다.] 즉, 이들은 애초에 졸업할 때부터 군대란 조직 내에서 그렇게 인정받는 집단이 아니었으며, 실제로도 이후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정권에 아부하는 하나회 조직으로 뭉쳐 실력있는 사람들이 전방에서 구를 때 후방에서 온갖 비호를 다 받았고, 끈이 떨어지자 국가를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하나회의 시초가 된 육사 11기생들은 전쟁 경험이 풍부한 선임들에 비해서 내세우는 자존심은 4년제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는 것인데, 막상 그 4년제 교육마저 썩 성실하게 수료하지는 않았다. 그런 주제에 '하나회'라는 한글 석 자만 믿고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한 것이다. 심지어 월남전을 보듯 이들이 선임들만큼 잘 싸우지도 못했다. 결국 윤석열이 주장한 '잘 정비된 군조직'이란 것이 사실상 [[국방|자기 일]]은 커녕 [[정치|다른 곳]]에서까지 제대로 한 일이 없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제대로 한 일이 없다기보단 제대로 한 일이 존재하기는 하나 과오가 그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다. 하다못해 6공화국에서 가장 무능하다 평가받는 박근혜조차도 전두환처럼 자국민을 직접적으로 탄압하는 미친 짓은 안 했다.] 결국 [[김영삼]]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인 하나회 숙청 당시, 하나회 이외의 다른 군부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지켜만 보거나, 권영해, 김동진, 백승도 등 오히려 김영삼을 도와 숙청에 가담한 인원도 있었다. 보통 조직에서 사건이 터지면 최대한 쉬쉬하고 넘어가려던 게 당시 군부였지만 하나회는 군부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을만큼 부패했고, 그 보수적인 군 내에서도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두환은 악평과 별개로 전문가한테 맡겨만 놓은 채 뒤에서 팔짱끼고 지켜보는 인물이 아니었다[* 1999년 9월, [[노태우]]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전 대통령의 성격은 일이 벌어지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가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뛰다 보면 기회도 많지만 자칫 남과 충돌할 수도 있고, 고립될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고 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부적절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그가 정치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경제안정이었고 정권을 잡자마자 죽자사자 경제공부에 매진해서 나중에는 어느 정도 식견을 보이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애초에 [[바지사장|누군가에게 맡겨놓고 지켜보기만 한다는 건]] 지도자로써의 덕목이 아니라 [[책임회피]] 및 [[근무태만]]이다. 어떠한 일이 터졌을 때 부처 간의 책임과 권한을 확정하여 쓸대없는 이권다툼이나 병목현상을 최소화하고 부처의 가용 자원을 어디까지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 현장의 인력들이 구할 수 없는 외부 세력의 조력까지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힘들을 다시 재정리해서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지도자가 할 일이다.[* 그래서 [[유승민]]이 토론에서 [[윤석열]]의 이 발언을 두고 비판한 것이다.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과 인재를 보는 안목 역시 본인이 어느 정도 식견이 있어야 판단이 가능하니.]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이 왜 그렇게 비판받는 일인지는 두 말 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종합해보면 5.18과 쿠데타 이외의 과오들을 무시한 역사인식의 부족에서 나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시 말해서 해당 발언은 "[[독재]]도 과정은 문제이지만 결과가 괜찮으니 좋은 것" 수준의 발언이 된다. [[https://news.v.daum.net/v/20211020063050566|#]] [[https://www.yna.co.kr/view/AKR20211020118900054?input=1195z|#]] [[문행주]] 전남도의원은 “전두환에 대한 옹호는 정권찬탈을 위해서는 선량한 국민을 학살해도 된다는 것이며,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5·18의 소중한 가치를 묵살한 것”이라고 분노했다. 이에 대해 "'''[[이완용]]도 [[매국노|나라 팔아먹은 것]]만 빼면 잘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완용은 관료로서는 매우 유능한 인재였다.] 단순히 네티즌들의 비꼼 정도가 아니라 [[정의당]]에서 공식적으로 낸 논평에도 이 말이 들어갔다. [[https://news.v.daum.net/v/20211020084115558|#]] 심지어 [[윤석열]]에게 우호적인 [[조국흑서]]의 저자들 조차 윤석열의 언행을 마치 [[아돌프 히틀러]]를 옹호하는 후대의 [[네오 나치]]와 비교하며 "정치적 언사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데 자꾸 더 금 밟으면 아웃이다."라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1019500148|#]]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629956?sid=100|#]] 최영태 전 [[전남대]] 교수는 SNS에 올린 글에서 “히틀러가 [[바캉스]] 제도를 도입하고, [[아우토반]]을 만들고, [[녹화사업|산림녹화]]에 [[1936 베를린 올림픽|올림픽]]도 열었지만 그 누구도 히틀러가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온갖 전쟁범죄들이 모두 저런 정책에 나오는 긍정평가를 모두 상쇄해버렸기 때문이다.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같은 소리가 개소리인 이유. 당시 같은 추축국이었던 일본에서조차도 90년대 초중반에 나치 독일을 모티브로 한 모덴군을 토벌하는 [[메탈슬러그]]가 만들어져 흥행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실제로 전두환을 제외하고도 나름 업적을 세운 지도자들이 악행이 너무 크면 그 공적이 0으로 취급받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고 직격했다. [[https://news.v.daum.net/v/20211114080327638|#]] 결론적으로 윤석열은 정치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말을 한 것이다. 대통령 후보에게 기대했던 국민적 커트라인을 무너트린 발언이었다. 상식적인 역사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확인할 수 없는, 왜곡과 망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욱이 피해자인 호남인을 통해 가해자인 전두환을 칭송한 어법은 광주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를 비판했던 [[이재명]]은 역시 [[이재명/비판 및 논란/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s-3.10|비슷한 수준의 발언]]을 하여 이 논란을 희석시키는데에 일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